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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09 출사기도문

BPipe 2016. 6. 21. 16:29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일이면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사실, 설렘과 기대보다도 두려움과 불안이 더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저에게는 돈보다는 빚밖에 없고,
내일 하루를 어떻게 연명해야 할까 걱정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냥 그렇게, 그것을 내가 '고난 받는다'라고 하기보다
저의 재정관리능력을 탓하게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요 주님. 그럼에도 제가 이 길을 가야 할 이유는 점점 더 선명해져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당신께서, 저를 이 자리로 부르고 계심을, 아니 그 울부짖음을 듣게 됩니다.

이사야서에 나온, 그 포학과 부르짖음을요.


주님, 헬조선이라고 합니다.
말로만 헬조선이 아니라 양적인 통계로, 주위에 살아가는 이들의 사례로, 질적인 상황들로 이 나라가 참으로 '지옥'이 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경쟁 속에 불공정한 운명을 숙명으로 알고 공교육의 시스템 속에 갇히는 아이들과, 그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무너진 가정을 견디지 못하고 바깥을 전전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잡아 줄 사람이 없어서 이익에 눈이 먼 어른들에게 이용당하는 아이들.
지독한 학벌사회와 서로를 갈라놓는 문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수저계급. 미친 등록금에 허덕이며 가장 귀한 젊은 시간을 돈 버는 데에 써야 하는 아이들. 빚을 지면서까지 공부해야 하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빚을 지고 시작해야 하는 아이들.
기업의 노예가 되는 아이들. 미친 부동산과 사교육비. 수시로 잘리는 노동환경과 비정규직. 보장되지 않는 복지. 각자도생의 사회. 그렇게 희생되는 자살자 수가 전쟁 사망자수에 육박하는 사회. 말그대로 전시상황의 대한민국.


이 헬조선이 세월호와 겹쳐보입니다. 그 세월호가, 그저 안전사고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갈수록 몸서리치게 느껴지는 때입니다. 배는 뒤집혔고,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라는 방송이 흘러나오지만, 그 방송은 배가 온전할 때 유효한 방송이 아닙니까. 지금은 직접 사태를 파악하고 배가 뒤집혔음을 인정해야 하는 때가 아닙니까.


그래서, 그 방송이 아니라 우리가 살 길을 찾아보고자 이 길을 택했습니다. 직장 가서도 제게 할 일 허락하실 하나님이신 것 알았지만, 도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고3때와 같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그보다 더 제가 펜을 들지 못했던 이유는, 그 선택이 제 20대를 짓밟는 선택이 될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살아버릴 것 같아서 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렇게 이기적이게도 저는 가족도, 여자친구도 외면한 채 이 길을 걷습니다. 그 출혈이 너무나도 큰 길을 걷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이 길 갑니다. 정말 이기적이게도 이 길을 갑니다. 정말 무책임하게도 이 길을 갑니다.
하지만요. 주님, 제가 증명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저의 '욕망' 때문에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이것이 저의 욕망 때문이라면 이 욕망은 짓밟혀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이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도 '행정학과'를 갈 수 밖에 없는 것은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물어보는, 경영학과 학생이 왜 행정학과에 왔냐는 그 물음. 그 물음에 대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말입니다. 이 헬조선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운좋게 선실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배가 뒤집어졌음을 깨닫고 이민을 갑니다. 배를 벗어납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방송만을 믿고 이 배 안에 갇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렇게 웃으면서 있습니다. 저희 대학부 아이들이, 저희 다음 세대가, 저희 비행기 탈 힘도 없는 아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정말 열심히 노력을, 노오력을 하면서 이 시대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배가 뒤집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그것은 사명이 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제가 해야 할 일은 배를 돌려 세우는 일입니다. 아직 배가 많이 기운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변침이 일어났지만, 아직 망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배를 다시 세워서 우리가 가야 할 그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은 배 하나를 띄우려 합니다. 먼저 선간에 있던 사람으로서, 그 선간에 있던 얼마 안되는 힘을 모아 배를 다시 세워보려 합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는 사회생태계 이런 것 바라는 것 아닙니다. 그냥, 그저, 이 나라 건지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니요, 하나의 '정책 패키지'가 나와야 합니다. 갑판만 물 위에 뜬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들 한둘만 더 구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배 전체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은 그저 정책이 아닙니다. 그 정책들을, 그 혼이 담긴 정책들을 일구어내는 하나의 '사상'입니다. 그 사상이 지금 이 시대에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상과 정신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집단이 필요합니다. 그 지도자집단은 단순히 명망있는 이들인 것이 아니라, 이 세대가 다시 일어나서 걸어갈 수 있는 '깃발'을 보여주는 사람들. 그 깃발이 그저 허영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하는 깃발이어야 합니다.
배 안의 아이들을 모아서, 함께 무게중심을 움직여서, 배를 세워야 합니다.


배에 대한 구조분석부터 들어가야 합니다. 이 나라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우파의 말대로 경쟁구조가 온전히 잡히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좌파의 말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 때문인지. 좌냐 우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좌우 불문하고 이 나라가 망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듯이, 좌우 불문하고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이후의 세부정책에서는 좌와 우가 갈릴 수 있겠지만, 이 나라를 살리는 하나의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은 배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의 방향타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배가 '기울어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꾸는 꿈은 그 어떠한 관행도, 그 어떠한 겉치레나 명분도 상관없이, 정말 하나님의 심장을 가진 역동적인 청년들로 이루어진 '문제해결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돈이 없더라도, 권력이 없더라도, 권한이 없더라도, 정말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그 본질을 건져낼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공동체. 10-20년이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그렇게 장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에는 죽어가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필요한, 찬연히 빛날 그 사상을 건져낼 이는 다른 곳에 있겠지요.


지금은 외치는 소리가 필요한 때입니다. 사람들을 모아서 뒤집힌 배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 이후에 배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음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배를 세우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말 진보와 보수가 제대로 대결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것. 정말 올바른 공론이 펼쳐질 수 있는 언론지형을 마련해주는 것. 정말 양질의 정책들로 대결할 수 있는 정책지식생태계를 물려주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재건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업가정신에서, 아니 사도들의 정신에서 그 키를 찾습니다. 사도 바울의 정신. 가는 곳마다 제대로 된 사상을 전파하고, 세상의 사상과 대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바울. 그리고 그 사상에 반응한 이들을 중심으로 이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서 하나의 공동체로 세워내었던 바울. 그리고 그들을 통해 그 지역을 책임지도록 하였던 바울. 끊임없이 서신의 교환을 통해 사람들을 길러내고 신앙의 유산을 세워나갔던 바울.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을 뛰어넘고,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중심 사상을 뛰어넘어서 보편주의로까지 치고 나갔던 바울.
그것은 현대에서는 마치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과 닮아 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그것에만 목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가치의 창출'을 위해 혁신과 삶을 내던지는 이들의 모습.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머리를 싸매어서 기어이 문제를 돌파하고야 하는 집념. 일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 김정헌 대표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생각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 이들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그저 그들의 동기는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이 막연히 꿈꿨던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도 그렇게 미친듯이 일하는데. 그렇게 온 몸과 삶을 던져서 해결책을 마련하고 돌파구를 마련하고 기어이 성취하고야 마는데. 자신의 삶을 전제와 같이 드리겠노라고 선언했던 사도 바울의 순교적 소명은 어떠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Social Entrepreneurship과 같이 사회혁신적 모습일지 모르지만, 이를 넘어서서 신앙적 뿌리로 무장된 정신입니다. 마치 송인수 대표와 같이, 시대적 문제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혁신적 방법들로, 본질을 꿰뚫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내고야 마는 집념입니다.


주님. 제가 보는 것은 그 '정책'이라는 것이 행정의 관료주의와 학계의 보신주의를 넘어서서 고민되었을 때 분명히 더 효율적이고 더 효과적이고 더 공정한 정책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꼭 '시장경제'의 이윤극대화를 향한 욕망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값싸게, 더 좋게, 더 빠르게, 환경을 선도하고 시장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서 시장을 '인도'하는 정책을 만들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름아니라 사람들의 '정신', 그 사상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가정신, 사도정신으로 정부혁신을 이루어내어 사회혁신을 이루어내는 것. 기업에서조차 기업가정신은 쉽게 세워지지 않지만,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다시금 생겨난 그 기업가정신. 이를 넘어서는 사도정신. 새로운, 그러나 정말 근원적인 사상혁명을 위해 일어난 이들을 통해 정부가 완벽하게 쇄신되는 생태계를 꿈꿉니다. 정말 기존의 낡디낡고 부패하디 부패한 유대의 종교권력을 박살내고, 동시에 지극히 부패하고 불공정했던 로마의 제국권력까지도 칼을 겨눴던. 무엇보다 로마도 유대도 주목하지 않았던 부정한 자들, 아프고 병들고 스스로를 죄인이라 저주하면서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이들 앞에서 이들에게 '구원'을 선사함으로 율법과 로마법을 바닥에서부터 뒤흔들었던 사도들의 스피릿. 그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가 이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의 생각은 가장 근원적인 생각이었기에 가장 급진적인 생각이었고, 가장 위협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으로 무장된 이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안적이었고, 급진적이었고, 위험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교회 공동체를 심으셨고, 각 지역에서 각자의 선교를 감당하게 하셨고, 기어이 로마 제국을 뒤흔드셨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역사와 운명을, 아니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통해서도 이루셨습니다.


고작 노예집단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 가운데에서 율법 아래에서 철저하게 무장된 하나의 종교적 집단으로 변모시키시고, 한 세대를 온전히 훈련시키셔서 가나안 땅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제의와 율법, 그 삶과 라이프스타일만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집단이 되게 하셨고, 전쟁의 때에도 세상의 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도록 해서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무모하고 나이브한 공동체로 보이게 하셨지만, 결코 다른 국가들이 침략할 수 없는 강고한, 그러나 도덕적으로 강고한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한국교회가 땅에 곤두박질 치고 있고 경건의 형식만 남은 채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이 때에. 그렇기에 동시에 의로움과 공평이 잊혀진 채 포학과 부르짖음만이 남아 하늘에 사무치고 있는 이 미친 세상에.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나야 할 때임을 믿습니다. 낡은 종교와 낡은 권력의 틀을 깨뜨리고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심장과 긍휼, 사랑과 공평과 정의를 기치로 내세우고 이를 대안적 정책과 정권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그래서 '말씀에 길을 묻는 지도자가 나라를 건지는' 그 공동체가, 그 빛과 소금되는 이들이 일어나야 하는 시기이리라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성공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 자체가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하고, 이 땅 가운데에 이 땅의 '회심'을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길로 돌아가기를 촉구하는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도정신. 그 정신으로 시대를 읽고, 공동체를 읽고, 사회를 읽어서. 그들이 글을 쓰고 사람을 모으고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창출해내야 합니다. 낡은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에훗의 검이 포학한 군주를 찔렀듯이 말입니다.


새로운 연구소를 시작할 겁니다. 그 연구소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을 대학원에서 해보려 합니다. 그 연구소는 연륜있는 고학력자들을 데리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연구소는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청년들로 이루어진, 대안정책을 생산해내는 연구소가 될 것입니다. 그저 담론에서 머무르지 않고, 한가지 시대적 문제에 대해 비교분석, 간학문적 분석, 방법론적 분석 등 모든 분석틀을 동원해서 해결책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것이 정부가 움직여야 할 일이라면 정부를 움직이고, 시민단체를 움직이고, 소셜 벤처가 필요한 것이라면 그러한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소셜벤처를 런칭시킬 것입니다. 어떠한 정치력이나 권위로 승부하는 연구소가 아니라, 오직 정책생산능력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그런 스타트업연구소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이 나라에 너무나도 필요한 연구소입니다.


역량도 정말 중요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역동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이 시대를 가지고 아파하지만, 정말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되거나 박사과정을 통해 학계에서 교수가 되어야만 하는, 하지만 가장 카르텔이 심하고 관료주의가 심한 그 공동체들이 아니라. 정말 이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이 마음놓고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장을 마련해주려 합니다.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펀딩을 조성하는 방법들도 고민해야겠지요.


그래서 이곳에서 역동적으로 정책들을 생산해내고, 그 전문성을 가지고 또다른 세부연구소들을 창립해나갈 수 있는, 소위 '서원생태계'를 꾸릴 수 있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전문성을 키운 이들이 각자가 소명으로 생각하는 문제들을 붙들고 씨름할 수 있는 연구소들을 만들어서 그러한 문제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공동체들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주님, 저 진짜 이거 할겁니다. 2년 후, 2018년 2월. 2008년부터 꿈꿔오던 마쓰시타 정경숙 같은, 하지만 더 구체화되고 더 역동성이 부여된. 그런 '나이오트'. 이걸로 벌어먹고 살겁니다. 아니요, 이걸로 시대적 문제들 씨름해서 기어이 정부혁신을, 사회혁신을 이루고야 말겁니다. 이 기울어진 배, 다시 세우고야 말겁니다. 우리 아이들은 구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어물쩡거리는 사이 단 한명도 건지지 못하고 수장되고 말았지만, 이 나라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조준과 김지를 기억합니다. 고려말 고려의 패망이 점쳐지던 시기, 혁명을 꿈꾼 것도 아니고 개혁을 꿈꾼 것도 아니고, 지방에서 10여년간 세미나를 열면서 정말 치열하게 '대안적 기획'을 꿈꾸었던 이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아무도 격려해주지 않았지만, 그들의 치열한 고민과 기획이 있었기에 정도전과 이성계가 과전법을 시행할 수 있었고, 세종이라는 위대한 지도자와 만났을 때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듯이.
정도전 이후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대안적 기획. 조광조의 개혁이 사화로 무산되고, 이이가 임진왜란을 막지 못했고,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났고,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이 수포로 돌아갔고, 을미의병이 진군에 실패하고, 윤치호가 친일로 막을 내리고, 김구의 임시정부운동이 '일반인 자격'으로 귀국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광복이 분단과 6.25로 변질되고, 4.19 혁명이 5.16쿠데타로 짓밟히고, 민주화운동이 97IMF로 끝나버리는. 그렇게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결코 포기한 적 없는 우리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끊기지 않는 화산맥이 터져나와야만 하는 시기 앞에 우리 가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터져나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화산맥이 기어이 온 한반도를 뒤덮어서 한반도를 쇄신하고 통일까지 이루어내는 그것을 꿈꿉니다.


정말, 그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주님, 사람을 주시고, 사람을 주시기 전에 제가 그런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저를 연단시키셔서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사도의 정신을 계승하여 정부혁신과 사회혁신을 이루어내는, 그런 예언자의 반차를 따르는 이가 되도록 저를 연단시키십시오. 그저 말뿐인, 그럴듯한, 능력은 없는 지껄임에서 치열한 현실분석과 제도사적, 간학문적으로 입체적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본질을 찾아내고, 찾아낸 본질을 토대로 방법론적으로 이를 정책화시키고 실현시키는, 그 능력. 그 능력을 갖추게 해주십시오. 제게 당신의 눈과 당신의 귀를, 당신의 입술과 손을 허락해주십시오. 당신이 보시는 예언자적 시좌로 역사와 운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식과 통찰을 허락하시고, 당신의 귀로 강자에 의해 부정되고 가려져 있지만 분명하게 들려오는 약자들의 울부짖음과 부르짖음을 듣게 하시고, 당신의 입술로 거짓된 사단의 체제를 폭로하고 이를 꾸짖고 회개를 촉구하게 하시고, 당신의 손으로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게 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배워야 할 줄 압니다.
당신의 눈을, 당신의 귀를,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입술을, 당신의 손을 배워야 합니다.


먼저는 당신의 눈을 배워야 합니다.
제도사적, 간학문적 정책지식을 알아서 당신의 시좌와 당신의 통찰을 배워야 합니다. 정치, 경제, 행정, 법, 경영, 사회, 기술 상관없이 간학문적으로 바라보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할 줄 압니다. 또한 문학, 역사, 철학, 신학으로 그 맥락과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어야 할 줄 압니다.
이를 위해서는 치열한 공부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귀를 배워야 합니다.
현장에 뛰어들어서 그 삶을 살아내고, 그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삶에 동참하면서 그들 가운데에 계셔서 일하시는 당신을 들어야 합니다. 알바의 현장에, 비정규직의 현장에, 노동자의 현장에, 소외와 사각지대의 현장에. 직접 뛰어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느끼고 경험하고 또 인격적으로 교제하면서 그들의 울부짖음 앞에 제가 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치열한 현장경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께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일해오신 과정, 또 당신에 대해,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에 대해, 또 이 세상을 향해 일하시고 품고 계시고 사랑하고 계신 당신의 방식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백성을 통해,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지. 일하셔 왔는지, 일하실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바라보시고, 무엇을 꿈꾸시는지. 무엇을 계획하시고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치열한 신학적 묵상과 숙고, 훈련과 실천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입술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께서 어떻게 이 땅을 바라보시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외쳐야 하는지. 어떠한 수단을 통해 이 시대와 대화하고 이 시대를 향해 외칠 것인지. 무엇을 외치며, 당신이 보고 듣는 바를 어떻게 가공하여 이 시대 앞에 외쳐야 할 것인지, 당신의 마음으로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것인지. 무엇을 촉구해야 할 것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대안을 만들어야 하고, 사상을 만들어야 하고, 들릴만한 말들로 언어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치열한 사고와 사고를 통한 집필, 각 이슈들에 대한 성찰과 대안의 제시. 끊임없는 토론을 통한 통찰에 입각한 대안의 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이 이 시대 가운데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어떠한 사람들을 세우셔서 어떠한 방식으로 시대의 바람을 일으키시고, 역사와 운명을 주관하시는지. 당신의 계획과 일들 가운데에서 제가 맡아야 할 역할은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부적으로 사상을 운동으로, 행동으로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갈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운용능력과 리더십, 펀딩능력, 정책기획과 캠페인 기획 등을 통해 계속해서 배우고 깨달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들을 배워나갈 때, 그리고 그 깃발 앞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들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정말, 제대로 된 하나님 나라 운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모든 기도 속에 치기 어리고, 현실감각없고, 야망에 가득 차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넘어서서 일해오시던 분이, 기어이 저의 욕망에 가득찬 계획보다 더 확실하고 완벽한 계획으로 당신이 허락하시던 언약을 성취해오시던 당신의 신실함을 제가 압니다. 더 많이 다듬어지게 하시고, 더 많이 깎이게 하시고, 더 많이 닳아지게 하옵소서. 그러나 다만 바라기는, 당신의 언약이 성취됨으로 그저 당신의 거룩함이 이 땅 가운데에 드러나게 하시고, 그 거룩을 살아내려고 발버둥치는 주의 백성들이 일어서게 하옵소서.


그래서 아합의 시대, 엘리야를 통해 보이셨듯, 예후를 통해, 하사엘을 통해, 엘리사를 통해, 오바댜가 숨겨기른 200명의 선지자를 통해,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천인을 통해. 기어이 아합의 시대 끝장 내셨듯이. 
이 야만의 시대, 헬조선의 시대, 각자도생의 시대. 끝내주시고, 그루터기 같은 이들을 일으키셔서. 이 나라 주께서 다시 오실, 강림하실 그 날까지 책임지고 목양하며 이 나라의 면역체계 역할을 감당할 그런 주의 세대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기도와 금식, 찬양으로,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세대.
산 옮길 강한 믿음 갖고, 기도로 하늘 문을 여는, 믿음으로만 사는 세대.
견디기 힘든 시련에도 의연히 흔들리지 않는, 세상이 감당 못할 세대.
물살을 가르는 힘찬 연어처럼 세상의 유혹을 다 거스를 세대.
하나님 나라와 주신 사명 위해 불가능을 가능케 할 기적의 세대.


우리 10대 때 하나님 앞에 올려드린 그 신앙고백. 신실하게 이루어주옵소서.
그런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를 드리는 저로 인함이 아니라, 이 소망함보다 더 크고 더 간절하게 일하실 하나님으 로 인해 기대하고 또 소망합니다.
담대히, 당신의 종으로, 부르시는 자리 순종으로 걸어가는 제가 되게,
그 가운데에서 당신의 일하심과 동행하심을 누리는, 아들로서 누리는 제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나무에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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